여행일지 -해외-/09' 유럽
[Gosotopo 유럽여행 2009] -24일째- 뮌헨, 오데온광장
고소토포
2011. 3. 14. 20:18
09.07.20 Mon
영국 정원을 나와서 우리는 신 시청사 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 오데온 광장이 보인다.
우리가 가지고있는 가이드북에는 안나오는 미지의 장소.
하지만 멀리서만 봐도 눈에 튀는 장소이다.
뮌헨 지하철역의 무가지들.
근데... 너무 지저분했다 ㅡㅡ;; 유리판 위에 먼지가 뽀야게 내려앉아있는...
길 건너편에 있던... 루드비히 1세 동상
주변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새 오데온 광장에 도착하였다.
오데온광장(Odeons Platz)
1791년경부터 조성된 오데온 광장은 세계대전사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간단히 말하면 1차세계대전당시 독일이 소련을 대상으로한 선전포고가 여기서 이루어졌고
1차 세계대전후 1923년 11월9일. 나치당원들 주도로 일어난, 뮌헨봉기때 히틀러가 경찰이 쏜 총에 죽을뻔 했던곳이다.
오데온 광장 앞에 있는 수많은 벤츠 택시들... ㅎㄷㄷ
오데온 광장 옆에 있는 테아티너 교회 (Theatine Church)
퓌센의 호엔슈반가우성 처럼 샛노란 교회다.
1662년에 건설된 이 교회는 로마카톨릭 성당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개,보수를 거처서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도 공사중이라고 문이 닫혀 있었다는 ㅡㅡ
그리고, 오데온 광장을 압도하는 하나의 건물. 바로 펠트헤른할레 (Feldherrnhalle)
펠트헤른할레는 1884년에 루드비히 1세의 명령으로
바이에른 군인과 전쟁영웅들을 위해서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다가 1900년 초반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자
히틀러는 1923년 뮌헨봉기때 오데온 광장에서 숨진 자신의 동지들을 기념하는 비를 펠트헤른할레 동쪽에 만들었다.
그후 2차세계대전 패망때 까지 친위대가 그 비를 지키고 서있었고,
히틀러는 뮌헨에 올때마다 그곳에 참배하러 왔다고 한다.
망할 히틀러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데온 광장.
광장 동쪽엔 (사진 오른쪽) 바이에른을 다스렸던 영주들의 거처인 레지던츠(Residenz) 가 있었다.
... 우린 있는줄도 모르고 걍 시청사를 향해서 갔다.
무식이 죄지 ㅡㅡ
오데온 광장 한쪽에 있던 어느 건물 문에 써있는
20 + C + M + B + 09
나는 요 글귀를 워캠 하던 뮐하우젠에서, 그리고 독일의 작은 소도시들 곳곳에서 셀수도 없이 많이 마주쳤다.
한결같이 집문, 방문에 하얀 분필같은 걸로 쓰여진 알수없는 비밀문자.
한국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리스도의 축복이 이 가정에 있기를. 2009년
이란 뜻이었다
C,M,B는 Christus Mansionem Benedicat 의 약자고 그 앞,뒤의 20,09는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제국시절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나치시절 유대인들이
신년마다 남몰래 서로의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해오던 풍습이라 한다.
펠트헤른할레 서쪽에서 만난 아랍계 가족.
펠트헤른할레에서는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는데
동쪽으로 뻗은 길은 뮌헨최고의 고급쇼핑가라는 막시밀리안거리로 향하는 길이었고
서쪽으로 뻗은 길은 신 시청사로 향하는, 평범한 카페의 거리였다.
우린 뭐... 아는거 없이 왔으니 아무길로나 접어들었는데 그게 서쪽길이었다 ㅡㅡ
서쪽길인 테아티너거리는
(테아티너 교회 앞 길이라 이렇게 지어진듯?)
처음부터 끝까지 길의 한복판이 노상카페였다.
점심시간이 다되가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우리나라에선 쉽사리 볼수 없는 풍경들이어서 좋았다.
카페의 거리가 끝나고도, 길은 시청사를 향해서 계속 이어져있다.
우리를 보고 더 울어 제끼던....;;;
우리가 무섭니?;;
카페거리를 벗어나서 햇살이 내리쬐는거리로 접어들자 뮌헨 신 시청사의 뒷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서 점점 바글거리기 시작하는 거리.
시청건물 뒷편이 공원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애기들은 어느나라 애기나 모두 똑같이 귀엽다 ^^
잠에 빠져든 꼬마아이.
영국 정원을 나와서 우리는 신 시청사 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 오데온 광장이 보인다.
우리가 가지고있는 가이드북에는 안나오는 미지의 장소.
하지만 멀리서만 봐도 눈에 튀는 장소이다.
뮌헨 지하철역의 무가지들.
근데... 너무 지저분했다 ㅡㅡ;; 유리판 위에 먼지가 뽀야게 내려앉아있는...
길 건너편에 있던... 루드비히 1세 동상
주변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새 오데온 광장에 도착하였다.
오데온광장(Odeons Platz)
1791년경부터 조성된 오데온 광장은 세계대전사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간단히 말하면 1차세계대전당시 독일이 소련을 대상으로한 선전포고가 여기서 이루어졌고
1차 세계대전후 1923년 11월9일. 나치당원들 주도로 일어난, 뮌헨봉기때 히틀러가 경찰이 쏜 총에 죽을뻔 했던곳이다.
오데온 광장 앞에 있는 수많은 벤츠 택시들... ㅎㄷㄷ
오데온 광장 옆에 있는 테아티너 교회 (Theatine Church)
퓌센의 호엔슈반가우성 처럼 샛노란 교회다.
1662년에 건설된 이 교회는 로마카톨릭 성당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개,보수를 거처서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도 공사중이라고 문이 닫혀 있었다는 ㅡㅡ
그리고, 오데온 광장을 압도하는 하나의 건물. 바로 펠트헤른할레 (Feldherrnhalle)
펠트헤른할레는 1884년에 루드비히 1세의 명령으로
바이에른 군인과 전쟁영웅들을 위해서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다가 1900년 초반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자
히틀러는 1923년 뮌헨봉기때 오데온 광장에서 숨진 자신의 동지들을 기념하는 비를 펠트헤른할레 동쪽에 만들었다.
그후 2차세계대전 패망때 까지 친위대가 그 비를 지키고 서있었고,
히틀러는 뮌헨에 올때마다 그곳에 참배하러 왔다고 한다.
망할 히틀러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데온 광장.
광장 동쪽엔 (사진 오른쪽) 바이에른을 다스렸던 영주들의 거처인 레지던츠(Residenz) 가 있었다.
... 우린 있는줄도 모르고 걍 시청사를 향해서 갔다.
무식이 죄지 ㅡㅡ
오데온 광장 한쪽에 있던 어느 건물 문에 써있는
20 + C + M + B + 09
나는 요 글귀를 워캠 하던 뮐하우젠에서, 그리고 독일의 작은 소도시들 곳곳에서 셀수도 없이 많이 마주쳤다.
한결같이 집문, 방문에 하얀 분필같은 걸로 쓰여진 알수없는 비밀문자.
한국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리스도의 축복이 이 가정에 있기를. 2009년
이란 뜻이었다
C,M,B는 Christus Mansionem Benedicat 의 약자고 그 앞,뒤의 20,09는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제국시절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나치시절 유대인들이
신년마다 남몰래 서로의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해오던 풍습이라 한다.
펠트헤른할레 서쪽에서 만난 아랍계 가족.
펠트헤른할레에서는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는데
동쪽으로 뻗은 길은 뮌헨최고의 고급쇼핑가라는 막시밀리안거리로 향하는 길이었고
서쪽으로 뻗은 길은 신 시청사로 향하는, 평범한 카페의 거리였다.
우린 뭐... 아는거 없이 왔으니 아무길로나 접어들었는데 그게 서쪽길이었다 ㅡㅡ
서쪽길인 테아티너거리는
(테아티너 교회 앞 길이라 이렇게 지어진듯?)
처음부터 끝까지 길의 한복판이 노상카페였다.
점심시간이 다되가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우리나라에선 쉽사리 볼수 없는 풍경들이어서 좋았다.
카페의 거리가 끝나고도, 길은 시청사를 향해서 계속 이어져있다.
우리를 보고 더 울어 제끼던....;;;
우리가 무섭니?;;
카페거리를 벗어나서 햇살이 내리쬐는거리로 접어들자 뮌헨 신 시청사의 뒷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서 점점 바글거리기 시작하는 거리.
시청건물 뒷편이 공원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애기들은 어느나라 애기나 모두 똑같이 귀엽다 ^^
잠에 빠져든 꼬마아이.